By 이동형 2020년 5월 7일 In Episode #2. 다시 심장이 뛰다

#1 석사졸업생이 한살림 공급실무자가 된 SSUL

설문조사?! 라떼는 말이야...

이동형 석사논문 설문지
3대 생협 수도권 매장 11개 매장
280명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내 적성에 맞는 일이 무엇일까?”

학부시절을 떠올려 내 적성을 찾아본다면, 가장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들었던 수업이 “마케팅 조사론”이였다. 내가 소비자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서 설문조사 설계에서 시작하여 해결한다?
지적 호기심이 많은 내 스스로 궁금한 점을 내가 직접 답을 찾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동시에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사회적 기업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만의 전문분야를 찾았다는 점에서 너무나 기쁘게 생각했다. (나도 하고 싶은 일과 잘 하는일의 교집합을 찾았어!)

의정부에서만 살던 우리집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과천으로 이사를 왔는데, 집 앞 상가에 말로만 들었던 한살림 매장이 있었다. “조합원의 출자금으로 운영되는 사회적경제조직, 생활협동조합 한살림”. 그리고 내일로 여행 중에 원주역에서 내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어림풋이 봤던 장일순 선생님의 모습(저 사람은 누구인데 원주역에 사진이 박혀있나? 그리고 바로 검색해봤던..). 그게 한살림에 대해서 내가 아는 모든 정보였다.

한살림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몇 번 이용해보다가, 이왕 써야할 석사논문을 생활협동조합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공하고 있는 유통경제학과 맞는 동시에 평소에 관심있는 분야를 소비자 설문조사를 통해서 분석해보자.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운영에 도움이 되겠지? 라는 작은 꿈을 가지고 석사논문 주제를 “지도교수님과 상의도 없이” 결정했다.

"하고 싶은 일"과 "적성"의 교집합
생활협동조합에 대한 논문

처음이자 마지막 논문일수도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동시에 내가 너무 관심있는 분야가 아닌가? 소비자 설문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생협 매장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해야했기 때문에, 각 지역 조합별 최고 책임자(상무님 내지는 이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그 때는… 상무님이 그렇게 높으신 분들인지 몰랐어요…)

논문을 쓰기 위해서 수도권 지역을 3대 생협, 네 지역(서울, 평촌, 수원, 일산)으로 나누었다. 매장이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알아야된다는 생각에 설문조사가 진행되는 매장에 아침 입고작업부터 시작해서 저녁 마감까지 활동가들의 업무를 돕고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평소에 없었던 젊은 남자가 매장에서 일을 하면서 설문조사까지 하고 있으니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덕분에 제대로 된 설문조사와 함께 생협에 대한 조합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논문을 쓰면서 지역 생협 운영책임자부터 이제 조합원이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조합원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현장감 있는 조사 덕분에 논문이 큰 어려움 없이 제대로 마무리 될 수 있었던거 아닐까?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기대하지도 않았던 학술지 개제까지…그리고 취업까지 한 번에 해결?!

내 논문이 현장에 도움이 안 된다고?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대해서 석사논문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실무자들과 소통할 일이 많아졌고, 그 결과 한살림에 입사하게 되었다. 처음 한살림에 들어갔을 때 가장 먼저 궁금했던 점은  “내 논문이 실제 업무에 도움이 될 것인가?”였다. 생활협동조합 매장에 대한 점포충성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분석한 논문이었는데, 실무자에게 도움이 될까? 정답은 NO!
나름 소비자생활협동조합에 대한 논문을 썼고, 실제 학술지에도 개제된 논문이었는데, 학술적으로는 가치가 있었지만 업무적으로는 도움이 안 된다는게 한살림 내부의 평가였다…
그 이유는 첫번째, 매장방문에 생협에 대한 사회적연결감을 높이는 것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매장에서의 업무(사업)과 사회적 연결감을 높이는 활동영역은 다르다(담당자가 다르다). 두번째, 분석결과가 실질적으로 매출과 연결 할 수 없다.(점포에 많이 오지만 객단가가 낮으면 무슨 의미?) 세번째, 매장의 성과에는 논문에서 분석한 변수보다 훨씬 더 많은 변수들이 영향을 미친다…(그리고 결정적으로 논문이 일반인이 읽기 어려워..)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사실 학문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대해서 대학원에서 끊임없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고심한 끝에 쓴 논문이였는데, 아쉽게도 그 괴리를 줄이지 못했다. 소비자 설문조사의 한계점을 더 깨닫는 좋은 경험이라고 해야될려나??

소비자 설문조사가 왜 실제 현장에 도움이 안될까?
내 나름대로의 이유를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한살림 조직 내에서 나의 논문은 아쉽게도 “석사과정 학생이 열정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쓴 분석논문”이라는 평가로 마무리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한살림에 들어가면 내 분석능력을 어떻게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비자 설문조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마무시하게 쌓여있는 조합원 데이터들… 한살림 어딘가에서는 이 데이터를 분석하는 팀이 있겠지?(지금까지 없다는…) 지금 열심히 공급사업팀에서 일하면 언젠가 내 능력을 펼칠 날이 한살림에서 오겠지?(4년이 지나도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는…) 지금하는 일에 묵묵히 열심히 하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은 4년쯤이 되었을 때, “절대 나한테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으로 바뀌었다. 데이터 분석을 하는 조직도 없고, 전문가도 없고, 실무책임자는 중요성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팀장님들의 말이 들릴리가 없었다.(처음에는 1년만 공급사업팀에 있으라면서요..)

열정만 가지고 시작했던
첫사랑같은 한살림

한살림은 첫사랑같은 직장이었다. 어떤 기대도 없이 시작한 프로젝트가 취업으로 연결되어 4년의 시간을 함께 했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첫 직장이었다. 공부 안하면 추울 때 추운데서 일하고 더울 때 더운데서 일한다고 어른들이 많이 이야기했다. 나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추울 때 추운데서 일하고 더울 때 아스팔트 위에서 물품을 조합원들에게 전달했다. 주변에서 석사졸업을 했는데 왜 험한 일을 하고 있냐고 물어볼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4년이라는 시간을 현장에서 있었다.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을까?” 자문해본다면, 그냥 사랑이었던 것 같다. 한살림이 가지고 있던 철학, 가치관에 대해서 동의했고 응원했기 때문에 힘든 일부터 먼저 시작했고, 4년이 지난 뒤, 나의 열망(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소비자 데이터 분석)과 한살림의 나에 대한 기대가 엇나가고 있다는 걸 느껴서 이별했다. 사랑해도 헤어지는 경우가 있구나… 인간관계든 조직과 개인의 관계든…

한살림 공급사업팀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갈망하던 나는 식품마케팅 컨설팅 업체인 팜넷으로 이직하게 된다…